하가다시리즈 5강
제목 : 경건이 습관이 되신 예수님
본문 : 누가복음 22:39~40 / 히브리서 10:25절
오늘 말씀은 하가다시리즈 마지막 말씀으로 ‘경건이 습관이 되신 예수님’입니다. 하가다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경건의 습관을 형성시켜 줍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읊조리면 그 말씀이 내 생각이 되고, 그 생각이 내 감정이 되어 언어로 선포되고, 그 언어가 행동을 유발하며, 그 행동이 반복되면 이것이 바로 경건의 습관이 됩니다. 경건의 습관이 만들어지면 그것이 성품이 되고 우리의 운명을 바꿉니다.
오늘 내 모습은 과거 내 생각의 결과입니다. 무형의 생각이 유형의 세계를 창조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생각을 통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의 생각이 이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말씀으로 선포되어 창조의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동일합니다. 인간의 행동은 생각의 결과입니다. 더 확장해서 습관은 생각의 결과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눅22:39) 예수님의 삶에는 많은 경건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셔서 산기도 하신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일상에서 감람산에서 기도하시는 행위는 몸에 베인 습관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팔려고 그 밤에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감람산으로 군병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의 일정한 삶의 패턴 곧 일정한 습관을 제자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 보면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매일 반복되는 새벽기도의 습관입니다. 새벽기도는 예수님의 몸의 벤 또 하나의 경건의 습관이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처럼 경건의 습관이 몸의 벤 또 다른 한 예가 있습니다. 다니엘 6장 10절 말씀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혔다는 것은 앞으로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조항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져 죽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죽을 줄 알면서도 몸의 벤 습관대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몸의 벤 하루 세 번의 기도하는 습관은 목숨을 잃어도 해야 하는 자동적 행동이었습니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경건의 습관이 형성되면 그 습관이 그 사람의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 습관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해 버립니다. 다니엘은 습관을 따라 하루 세 번씩 기도하다가 결국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래서 죽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사 다니엘의 손끝 하나 못 대고, 머리 터럭 하나 다치지 않게 했습니다. 오히려 원수들이 사자 밥이 되었습니다. 경건의 습관이 몸의 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기의 느부갓네살 왕, 벨사살 왕, 메대의 다리오 왕, 바사제국의 고레스 왕의 총리로 세움받을만큼 세상적으로도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동일하게 예수님도 경건의 습관을 따라 살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경건의 열매인 십자가가 예수님의 인생의 실패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다 담당하신 하나님의 뜻의 완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루는 승리의 자리였습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선언할 수 있습니까? 3일 후에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의 모든 경건의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의로운 행위였음이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경건의 습관이 결국 성경의 말씀을 다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절 말씀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신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경건의 습관을 따라 끝까지 모든 고난을 이겨내셨습니다. 몸의 벤 거룩한 삶의 습관은 고난의 십자가를 참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영광의 열매였습니다. 십자가 앞에 서면 우리의 본능적으로 살고 싶어 회피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안하고 쉬운 길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경건이 습관이 되면 고난과 환난 속에서도 묵묵히 의의 길을 선택 합니다. 왜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이 순교의 길을 갔습니까? 한순간의 행동입니까? 한순간의 결단입니까? 수없이 반복되는 진리에 대한 확신과 매일 예수님을 따랐던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 습관이 되어 고난의 때에도 십자가의 길을 자동적으로 선택하면서 가게 된 것입니다. 습관의 힘이 순교의 길을 가게 했습니다.
사실 손양원 목사님이 6.25전쟁이 터지고 인민군이 남쪽을 밀고 내려올 때 충분히 피난 갈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피난 가는 배에 억지로 몇 번이나 태웠지만 손양원 목사님은 배에서 도로 뛰쳐나왔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아버지 이대로 있으면 죽는 건 뻔한 일입니다. 어서 배에 오르세요” 수없이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손 목사님은 “피난처가 어디 있느냐 피난처는 주의 품뿐이다 재림도 가까웠는데 어디로 간단말이냐” 애양원에 있는 양 떼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면서 끝까지 남았고 결국 공산군들에게 잡혀 총살당했습니다. 왜 순교한 것입니까? 주님의 뜻대로 살 수 밖에 없는 삶이 이미 장부까지 무의식까지 새겨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7개월 동안 경북의성경찰서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시고 1939년 6월 다시 풀려 났을 때 홀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던 목사관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천명이 모여있는 산정현교회로 가서 그 유명한 ‘다섯 제목의 나의 기도’라는 유언적 설교를 했습니다. “첫째 나의 기도는 죽음의 권세에서부터 이기에 하여 주시옵소서입니다. 둘째 나의 기도는 장시간의 고난을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셋째 나의 기도는 내 어머니와 내 처자를 내 주님께 부탁합니다 입니다. 넷째 나의 기도는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시옵소서입니다. 다섯째 나의 마지막 기도는 내 영혼을 내 주님께 부탁합니다 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이미 순교를 각오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944년 3월 31일에 몸의 벤 경건의 습관을 따라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절하다가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예수님도 다니엘 선지자도 주기철 목사님도 손양원 목사님도 다 경건의 습관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길을 간 것입니다. 경건의 습관은 우리를 어떤 고난에서도 정도의 길을 걷게 합니다. 습관의 힘은 결단보다 의지보다 더 강한 힘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습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에 따라 판명되는 존재다. 따라서 우수성이란 단순한 하나의 행동이 아닌 바로 습관이다” 그 사람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위대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반복적인 행동인 습관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수성이란 단순한 하나의 행동이 아닌 바로 습관이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좋은 습관은 인생의 풍요롭게 하는 가장 큰 자산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컨설턴트 잭D 핫지가 쓴 ‘습관의 힘’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잡아 길들이고 훈련시키고 단호하게 통제하면 나는 당신의 발밑에 이 세상을 바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파괴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습관이다.”
좋은 습관은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하는 가장 큰 자산입니다. 그러나 나쁜 습관은 삶을 피폐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큰 파괴범입니다. 습관을 잘 길들이고 훈련시키면 그 습관이 우리를 행복한 삶 승리하는 삶 풍요로운 삶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나쁜 습관이 형성되면 그 습관 때문에 우리는 평생 그 습관의 종노릇하면서 불행하고 피폐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26장 11절에 보면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개가 그 토한 더러운 것을 또 먹습니다. 우리가 볼 때 저러니까 개지 저러니까 짐승이지 판단합니다. 그런데 미련한 인간도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듯이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그 행동을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나쁜 습관이 한 번 형성되면 내 의지로 고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알면서도 그 행동을 반복합니다. 안하고 싶어도 그 상황에 들어가면 또 그 행동을 반복합니다. 습관이 이처럼 무섭습니다. 심지어 한 번 형성된 옛 습관은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습관에 따라 불순종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게 합니다.
히브리서 10:25절 말씀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나님은 마지막 때일수록 교회가 모이라고 말씀합니다. 모여서 함께 예배드리고,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모여서 전도하라고 합니다. 성경은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본성에는 모이기를 폐하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게으름 때문입니다. 귀찮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몸의 베인 편안함 안락함의 습관을 따라 모이기를 폐함으로 교회를 무너뜨립니다. 안락함을 쫓는 습관이 하나님의 뜻을 폐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더욱 힘써 모여라! 모이는 것이 습관이 되기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팩트 입니다. 끓는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개구리는 즉시 뛰쳐나옵니다. 하지만 개구리를 물에 넣고 천천히 끓이면 그 개구리는 점진적인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그대로 있습니다. 변화가 천천히 일어나면 사람들은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나쁜 습관은 거의 대부분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언제 생겨났는지 알지도 못한 채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그 습관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 습관이 한 번 형성되면 이제 우리의 삶을 파멸시켜가도 거기에서 뛰쳐나오지 못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습관을 바꾸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은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습관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습관이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날씨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도 다시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받은 나쁜 평가도 바꿀 수 없습니다. 학창시절 성적표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에 대한 나의 반응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습관은 선택입니다. 나쁜 습관을 버리는 길은 좋은 습관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습관에 대해 주도적이어야 합니다.
실제로 한 번에 습관을 바꾸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마치 정지 상태의 기차를 움직이려 하는 것처럼 힘듭니다. 하지만 작은 습관부터 만들고 나면 다음에는 좀 더 쉬워집니다. 예를 들어 영어공부 하루 1시간 하겠다는 것보다 하루 1분 하겠다고 쉽게 시작해야 합니다. 작은 습관이라도 만들기만 하면 점차 그 습관이 조금씩 향상됩니다. 토마스 아켐피스가 했던 말입니다. “하나의 습관이 다른 습관을 정복한다” 동일한 원리의 중국 속담도 있습니다. “태산을 옮기려 해도 작은 돌부터 날라야 한다” 습관을 한 번에 바꾸려고 하면 힘듭니다. 그러나 작은 습관부터 쪼개어 일관되게 실천하다 보면 커다란 변화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연초에 성도님들께 올해 저의 삶을 경영하는 10가지 첵크리스트를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첫째 아침 8시까지 단상에서 하루 3시간 기도하기, 둘째 성경읽기 1시간, 셋째 아침 원복선포기도와 저녁 성찰일기쓰기, 넷째 일반서적 1시간 읽기, 다섯째 영어공부 하루 30분, 여섯째 걷기 8천 보, 일곱째 팔굽혀 펴기 매일 30개, 여덟째 전화 심방 하루 2두 번, 아홉째 7시 이후 간식 먹지 않기, 열째 가족사랑 칭지격동하기입니다. 처음 연초에 시작하면서 하루 결산을 해보면 30% 정도 실천했습니다. 비참한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3월이 된 지금은 60%를 넘었습니다. 조금씩 나의 삶을 디테일하게 경영하면서 저의 저녁시간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어져 가고 있습니다. 비행기 경로가 조금 틀어지면 별로 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조금씩 조금씩 틀어지다 보면 목표지점에서 엄청난 격차가 나옵니다. 습관이 그렇습니다. 하루 하루의 습관이 당장 볼 때 크게 내 삶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당장 열매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습관이 1년이 되고 5년이 되고 10년이 되면 엄청난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예레미야 6:19절 말씀입니다.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왜 이스라엘 백성이 망합니까?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가서 평강을 얻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파순꾼을 세워 ‘너희들이 멸망할 것이니 너희의 삶을 고치라’ 해도 그들은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대답합니다. 왜요? 그들의 반복적인 생각의 결과로 이미 나쁜 습관이 형성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속에 있는 개구리처럼 점점 뜨거워져서 죽게 되어도 멸망의 삶에서 뛰쳐나오지 못합니다. 그들의 무의식까지 이미 죄악의 길을 따라 살아가도록 프로그램화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나쁜 습관이 그들의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부분의 행동은 무의식 속에 이미 프로그램화된 대로 나옵니다. 다시말해서 프로그램된 습관을 따라 자동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는 선택의 90%는 이미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는 프로그램화된 습관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선택 할 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습관은 분명히 바꿀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먼저 좋은 생각을 선택하면 됩니다.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그 생각 중에 긍정의 생각 희망의 생각을 내가 선택하면 됩니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좋은 생각을 내가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을 선택할 때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생각을 바꾸면 감정이 바뀌게 되고, 감정이 바뀌면 희망의 언어가 나오고, 그 희망의 언어가 내 행동을 바꾸고, 마침내 습관이 되게 하여 운명을 바꾸게 합니다. 결국 습관 바꾸기는 생각의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습니까? 하가다를 통해서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면서 하나님의 사상을 내 생각으로 기준으로 삼으면 됩니다. 그러면 조금씩 감정의 변화, 언어의 변화,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고 마침내 예수님처럼 다니엘처럼 경건의 습관이 만들어집니다. 경건의 습관이 형성되면 우리의 삶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선택하면서 생명을 선택하고 은혜를 선택하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시편 1:1~3절 말씀의 복있는 사람의 삶이 열매로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우리 성도님들이 하가다를 통해 생각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서, 언어를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마침내 경건의 습관을 만들어 그것을 성품화시켜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복된 삶을 살아내시기를 기도합니다. 데오드로 루즈벨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행동 행동, 그리고 더 많은 행동” 말씀을 따라 이제 순종하는 행동을 하십시오. 머리로 신앙생활하지 말고 말씀에 따라 행동 행동 더 많은 행동을 함으로 그것이 경건의 습관이 되게 하십시다. 신앙은 이론이 아닙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닙니다. 신앙은 순종이고 실천이고 행동이고 습관까지 가야 합니다. 경건의 습관은 마침내 여러분들을 시편 1편의 복있는 사람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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