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5일 신년말씀
제목 : 새 마음, 새 영, 새로운 삶
말씀: 에스겔36:24~27
하나님 덕분에 한 해를 살아내고 새 해를 희망 가운데 맞이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오늘은 새 해 첫 주 주일예배로 드립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해에 새 영을 부어주고 새마음을 주사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겠다.
이사야43: 18~19절 말씀도 동일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하나님은 옛 날 일을 반복하시는 지루하신 하나님 매너리즘에 빠진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또한 조금도 진보나 발전이 없는 구태의연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새 일을 행하시는 창조성의 끝판왕이시고 창의력의 종결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해에도 우리에게 새 영을 넣어주시고 새마음을 주셔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대 반전이 일어나는 새해를 기대하면서 나아갑시다.
에스겔서 36장부터는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희망의 말씀입니다. 36장 1~15절을 보면 과거에 높아지고 존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하여 황폐하게 되고 이웃 나라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음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암몬 족속들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망하자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며 마음을 다하여 멸시하고 즐거워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치셨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멸시하자 하나님은 맹렬히 질투하십니다. 감히 내 백성을 멸시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뻐하고 조롱하는 이방나라들을 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수치를 당한 만큼 이방인에게 수치를 갚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비록 죄 때문에 넘어지고 때로는 징계를 받아 세상 사람들에게 멸시받을 때에 아파하십니다. 만약에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해 불신자들이 조롱하고 입을 삐쭉거리면서 멸시하면 오히려 그들을 치십니다. 주의 자녀들이 죄 때문에 넘어지고 깨지고 볼품없는 상황에 처해져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멸시받는 것은 곧 하나님이 멸시받고 모욕당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이 죄 때문에 무너지고 황폐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때가 되면 반드시 긍휼을 베푸시고 회복시키십니다. 왜요?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황폐하고 멸시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회복됩니까?
8-10절을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열매를 맺으리니 그들이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라 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 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내가 또 사람을 너희 위에 많게 하리니 이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을 성읍들에 거주하게 하며 빈 땅에 건축하게 하리라”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지 70년이 된 후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을 다시 회복시키고 풍요롭게 하십니다. 그 땅에서 가지가 나오고,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땅을 갈고 곡식을 심어 풍성하게 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돌아와 성읍에 거주하고 빈 땅에 건축을 하게 합니다. 전에 높아지고 존귀했던 그 지위대로 회복시켜 주시고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십니다. 바벨론에게 망하기 전보다 더 번성하게 하십니다.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새 이스라엘로 만들어 주십니다. 35절에 보면 이스라엘 땅을 ‘에덴동산’ 같이 되게 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우리가 범죄할 때 하나님은 우리 삶의 터전을 황폐케 하십니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도 땅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우리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처음보다 더 낫게 대우하십니다. 다시 우리의 삶의 터가 에덴동산처럼 기름지고 부유하고 풍성하게 하십니다.
돌아온 탕자 비유를 보십시오. 둘째 아들이 아버지 집을 떠났을 때 돼지치기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벌여 주셨습니다. 탕자는 자신을 종으로 여겨달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제일 좋은 옷, 가락지, 신발, 살진 송아지 등으로 처음보다 더 낫게 대우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내가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리라” 제발 하나님의 마음과 능력을 알라는 것입니다.
20~21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아끼십니다. 여기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는 뜻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더럽혀진 이름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의 명예를 되찾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회복시키고 그들을 존귀하고 보배로운 위치에 세워 주심으로 하나님의 명예와 이름을 회복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의 삶을 회복시킴으로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도 회복시키십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더럽혀진 영광을 회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우리의 삶에 달려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명예를 걸고 진실하고 거룩하고 위대하고 아름답게 살아내야 합니다. 자식이 칭찬받으면 부모님의 이름도 존귀하게 됩니다. 자식이 잘되면 부모님의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똑같은 원리입니다. 히브리서 11:16절을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으로 일컬음 받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0 0 0 의 하나님을 것이 자랑스럽다 말씀하시길 기도합니다. 2025년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가 걸려있기에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길 원하고 또 원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어떻게 회복시켜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까지 회복하십니까?
25-27절 말씀입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나님은 먼저 맑은 물을 뿌려 그들을 정결케 하겠다고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맑은 물은 예수님의 보혈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서10: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예수님의 보혈은 어떤 더러운 죄도 맑히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능히 섬기게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를 모든 저주에서 살려내고 모든 수치와 조롱에서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죄가 주홍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시고 우리의 죄가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우리 마음의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우리의 모든 냄새 나고 추악한 죄가 덮어져 깨끗해집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를 정결하게 씻어서 거룩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 아빠 아버지로 부르며 교제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맑은 물로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의 명예까지 회복시키는 은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또 새 영을 우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순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먼저 새 영을 받습니다. 그리고 새 마음을 얻습니다. 새 마음을 얻으면 새 삶이 펼쳐집니다. 여기서 새 영이란 성령충만함을 말합니다.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마음이란 지정의가 있는 혼의 영역입니다. 우리의 영 안에 하나님의 새 영이신 성령이 뚫고 들어오면 우리는 거듭나게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리고 새 영을 받으면 지정의가 있는 혼의 영역인 마음까지 새로워집니다. 새 영이 들어오면 마음까지 새로워진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마음이 새로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했습니다. 즉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은 굳은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왜 육신의 굳은 마음이 제거되어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새 삶을 살게 됩니까?
굳은 마음은 아무 감각이 없습니다. 이 마음은 교만과 아집으로 돌처럼 딱딱하여 어떤 자극에도 느낌이 없는 마음입니다. 특별히 굳은 마음은 꽉 닫혀 있는 마음입니다. 이기적이고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항상 과거의 경험과 자기 기준이 견고하고 자기 신념으로 똘똘 뭉쳐있어서 하나님이 공급해 주는 구원의 지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의견이나 생각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굳어진 마음에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뜅겨 나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실 때 먼저 새 영을 주시고 그 다음에 새 마음을 주신 후에 새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새 영을 우리 속에 넣어주시고 새 마음을 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순종하여 살게 됩니다. 우리는 내 의지와 결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지 못합니다.
우리의 영이 죽고 녹슬고 마음이 돌같이 굳어진 상태에서 하나님이 아무리 새 일을 행하려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죽어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하고 연약한 존재인지 압니다. 우리의 삶은 결심으로도 노력으로 새로워지지 못합니다.
반드시 새 영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것에 대한 신약적 확증이 로마서 8:3~4절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의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선한 뜻대로 살고자 하지만 육신의 연약함으로 할 수 없습니다. 아담 안에서 부패한 우리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아가도록 세팅되어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가 되었기에 몸의 사욕을 이길 수 없습니다. 더불어서 공중에 권세 잡은 자 어둠의 영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말씀처럼 ‘그 때에 너희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사탄 마귀가 장악한 세상의 풍조를 거슬려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살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의 연약함이 문제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7:18~19)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진짜 내 양심의 법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쳐본 분들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내 마음을 인정하고 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양심대로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는 사람은 진심으로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마저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선하다고 하고 의롭다고 합니다. 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완고한 마음이고 돌같이 굳어진 마음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살리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게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욕심을 못 박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이 만족하는 의를 예수님이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안 됩니다. 왜? 새 영이 우리에게 와야 합니까? 하나님이 아들이 완성한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2000년 전에 골고다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대신에 예수님이 성취하신 의를 우리에게 주고자 부활하신 이 엄청난 복음이 우리에게 와야 하는데 우리의 이성과 우리의 지성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돌같이 굳어졌기에 우리의 마음이 교만으로 똘똘 뭉쳐있기에 길가와 같고 돌 같은 마음이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우리 안에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 영이신 성령님이 오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영을 뚫고 들어오면 우리는 갑자기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하나님이 이루신 복음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합니다. 고린도전서 12:3절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이 와야 예수님을 주시라 영접하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항상 감사한 것은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정결하게 씻는 복음을 완성해 놓으시고, 우리 안에 새 영, 하나님의 영을 넣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돌 같은 마음을 어루만지사 부드럽게 하시어 우리를 정결케 하는 복음을 영접하여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며 교제하게 해 주신 사실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새 영을 받을 때, 새 마음이 되고, 새 마음이 될 때 말씀에 순종하여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35절에 나옵니다.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영이 새로워지고 마음이 새로워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 때에 황폐한 땅이 에덴동산처럼 풍성해집니다. 멸시받고 천대받던 삶이 존귀하게 되고 영광스럽게 됩니다. 새 영을 받고 새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대역전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새 영을 주시고 새 마음을 주어 말씀에 순종함으로 황폐한 삶이 에덴동산처럼 변화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37절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아무리 하나님이 새 영을 부어 주고 새 마음을 주어 우리를 회복시키고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적의 인생을 살게 하려고 할지라도 그래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새 삶이 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적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새 영을 두고 새 마음을 주어 새 일을 행하시도록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 안에 넣어주신 하나님의 새 영을 지키기 위해서, 부드러운 마음이 지속되도록, 내 삶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기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새 마음, 부드러워진 마음이 완악해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다윗이 범죄 한 후 가장 두려워 한 것이 무엇입니까? 시편51:9-11절에서 그는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했습니다. 다윗은 죄로 말미암아 성령을 거두어 가시는 것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왕의 자리를 빼앗기는 것보다 성령을 거두어 가시는 것이 더 두려웠습니다. 그는 사울 왕에게서 여호와의 영이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했습니다. 물론 신약시대에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은 영원히 함께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가 성령의 활동을 정지시킬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이것을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살전5:19) 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것은 너의 안에 활동하고 계시는 성령의 역사를 정지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활동이 소멸되면 우리는 불신자처럼 악령이 우리를 밀까부르듯이 가지고 놀게 됩니다. 영적으로 깨어나지 못하면 사탄 마귀에게 속아 시간을 헛되게 낭비하고 물질을 낭비하고 몸까지 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내 안에 거하시는 새 영, 하나님의 영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재산관리, 건강관리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성관리에 최우선권을 두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지속적으로, 적극적으로, 주님과 영적인 교제를 위해서 말씀 보고 기도하면서 마음이 늘 부드러운 상태에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2025년 한해가 역전의 한해 기적의 한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축복의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이번 주 6~10일까지 신년 특별새벽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새 영을 부어 주셨고 새 마음을 주셨고 새 일을 행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만히 앉아만 있고 성심성의껏 하나님의 행하실 일을 돕지 않으면 하나님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려 할지라도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힘있게 역사하지 못합니다. 기도함으로 새 영을 주시고 새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도록 여러분의 지정의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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