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누가복음33강(제목: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2025-01-19 09:38:49
김성철
조회수   65

누가복음 33

제목 :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말씀 : 누가복음 11:33-36

 

7년여 동안 착용하던 다초점 안경을 바꾸었습니다. 오래 동안 착용해서인지 안경에 기스가 많이 나서 착용하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견디고 버티다가 마침내 우리 이장로 안수집사님이 운영하는 효성 안경점에서 새로운 다초점 안경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안경을 새롭게 착용하는 날 세상이 달라 보였습니다. 모든 실체가 또렷하게 보여서 새 안경의 힘을 느꼈습니다. 안경이 밝으니 세상도 밝아지고 마음도 밝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안경만 바꾸어도 세상이 달라보이는데 영적인 눈까지 밝아지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해질까요?

 

흔히 세상을 보는 눈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육안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실체를 그대로 보는 육신의 눈입니다. 육신의 눈은 시력이 중요한데 시력은 위치와 방향 빛깔과 모양을 통해 사물을 구분하고 이해합니다. 시력이 떨어지면 꼭 필요한 것이 안경입니다. 안경은 흐릿한 시각을 교정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게 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은 객관적이지만 늘 욕망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 화려한 것, 쾌락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속기 쉽고 현실을 왜곡해서 보기도 합니다.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데로 보는 것이 육신의 눈의 한계입니다. 육신의 눈은 잘 포장된 선물을 볼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선물을 주는 의미와 가치를 보지 못합니다. 육신의 눈은 아름다운 꽃을 보아도 그 꽃이 피기까지 겪는 고난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또한 중세시대 때 육안이 가져다주는 왜곡으로 천동설을 믿었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고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태양을 중심으로 모든 천체가 회전한다는 지동설로 교체되었습니다. 육안이 주는 한계에 대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둘째는 심안입니다. 지혜와 이성을 통해서 내면을 보는 눈입니다. 중세신학자 보나벤뚜라는 이 눈을 이성의 눈이라고 했습니다. 이성의 눈이 뜨여지면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고, 육안이 보지 못한 사물의 이면을 보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잘 포장된 선물 이면에 주는 사람의 마음까지 파악하게 됩니다. 심안이 밝은 사람은 지혜롭게 인생을 선택합니다.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 회장은 현대건설 사훈으로 담담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굳세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담담한 마음이란 무슨 일을 할 때 착잡하지 않고 말이나 생각이 정직한 상태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복잡한 마음에서는 사물의 이치, 문제의 핵심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담담한 마음은 맑은 마음입니다. 심안이 밝아지면 태도도 당당하고, 굳세지고, 의연해집니다. 심안이 밝아지면 세상을 지혜롭게 살게 되고 성공하는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셋째는 영 안입니다. 영 안은 거듭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눈입니다. 육안이 밝고 심안이 맑다고 해서 영안이 열리지 않습니다. 영 안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열리는 눈입니다. 영 안이 열려지면 하나님이 느껴지고, 성경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내가 죄인임을 인식하고,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지신 십자가를 보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영 안이 열린 대표적인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엘리사 사환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가 보니 도단 성을 아람 군대와 병거와 말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이 때 겁에 질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 하리이까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보다 많다며 그 사환을 위해 기도합니다.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소서그러자 사환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싸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또 하나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울이 3일 금식 기도한 후 아나니아라는 주의 종이 와서 안수기도할 때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다고 했습니다. 이후 사울은 그 동안 수없이 율법서를 읽었어도 보이지 않았던 예수님의 관한 말씀이 보였고 구약을 복음적으로 해석하는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영 안이 열리면 영적 세계가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감동이 되고 그 말씀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오늘 말씀은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33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이란 조선시대 사용했던 부피 단위인 을 뜻합니다. 한 되는 약 2리터이고 한 되를 열 번 세면 한 말이 됩니다. ‘한 말은 약 18리터에 해당하는 큰 부피를 가진 바구니를 뜻합니다. 즉 등불을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한다는 뜻은 등불을 켜서 큰 바구니 안에 둔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등불은 온 집을 밝히는 빛입니다. 그래서 그 빛이 밝게 비추도록 등잔 위에 두는 것이 상식입니다. 등불을 등잔대 위에 둠으로 방을 환하게 비추게 하면 밤에도 불편함 없이 살 수 있습니다.

 

34절 말씀입니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등불은 온 집을 밝히는 빛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그 등불이 희미해지면 온 집안이 어두워져서 불편한 것이 많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등불은 눈입니다. 그래서 몸이 열 냥이면 눈은 아홉 냥이라고 했습니다. 눈이 성해야 사물을 바로 보고 바른 판단을 해서 걸을 때, 방향을 틀 때, 어떤 행동을 할 때 몸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등불을 등경 위에 두는 것처럼 몸의 등불인 눈도 항상 밝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눈은 무엇을 말합니까? 에베소서 117~19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기서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는 뜻을 해석할 수 있는 문장이 나옵니다. 바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그리고는 마음의 눈을 밝히사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의 눈이란 영어로 ‘the eyes of your heart’입니다. 이 눈은 육신의 눈이나 이성의 눈과 구별되는 영적인 눈을 의미합니다. 너희가 영적인 눈을 떠서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기를 바란다. 영적인 눈을 떠서 너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지, 너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의 풍성함이 얼마나 큰지, 현재 너희 안에 역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지 너희가 알게 되기를 바란다는 바울의 에베소 성도들을 향한 기도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희 몸의 등불은 눈이라는 뜻은 너희의 삶을 밝게하는 것은 영적인 눈이 밝아지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영적인 눈이 밝아야 온몸을 상징하는 전 인생이 밝아집니다. 물론 육신의 눈이 밝으면 사는데 불편함이 없습니다. 또한 심안이 밝으면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고 세상에서 남들과 다른 각도로 생각하면서 경쟁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눈에 보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눈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적인 눈까지 밝아야 합니다. 그래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살 있습니다. 바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 인간의 역사를 통치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보여야 우리는 영원한 선상에서 내 삶의 미래를 선택하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기적의 인생을 경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16:9) 했습니다. 영안이 열려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고 인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듭난 성도들은 모든 눈에 비늘이 벗겨져 영 안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서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압니다. 또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 구원의 능력이 있음을 압니다. 현재 내 삶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내 안에 있는 그 기업의 영광과 풍성함이 얼마나 큰지, 내 안에 역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 어떠한지 압니다. 그러나 아무리 영 안이 열렸다 할지라도 이러한 영적 세계가 항상 충만히 내 안에 보여지고, 느껴지고, 믿어져서 땅의 것을 찾지 않고 하늘의 것을 찾는 삶이 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영 안은 늘 흐려질 수 있고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뭣 땜에요? 바로 죄가 끼이면 영 안이 흐려집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야고보서 3:14~15절입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 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생기는 독한 시기, 미움, 다툼, 거짓말, 음욕 이런 것들은 위에서 내려온 지혜가 아니라고 합니다. 땅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땅의 것을 묵상하고 찾는 결과입니다. 17절에서 위에서부터 내려온 것은 무엇인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위의 것을 추구할 때 성결한 삶과 이웃과의 화평한 삶,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고 품는 관용한 마음, 어질고 순한 양순, 긍휼의 삶, 편견과 거짓이 없는 정직한 성품... 이런 모든 것들이 내면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이처럼 영 안이 열리면 위의 것을 추구하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고, 영 안이 흐려지면 땅의 것을 추구하면서 육성의 열매를 맺습니다. 영 안이 어두워지면 위의 것을 찾는 힘이 점점 멀어지고 땅의 것을 찾는 힘이 점점 강해집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는 힘입니다.

 

결국 우리의 영 안을 어둡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이물질이 영혼의 눈을 혼탁하게 합니다. 만약 우리 안에 덕지덕지 끼는 죄를 늘 닦아주고 씻어내면 우리의 영적 시력은 항상 밝게 유지될 것입니다. 어떻게요?

 

첫째 기도생활을 규칙적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존재로 살아가려면 반드시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만약 기도 생활이 멈추면 영적인 호흡이 끊긴 것과 같습니다. 진짜 믿음의 사람은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 영혼이 시들고 황폐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가 열릴 때 우리 영 안에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집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령충만이라고 합니다. 결국 규칙적인 기도생활은 우리의 영 안을 더 밝게 해주고 비밀한 하나님의 계시의 세계, 지혜와 진리의 세계, 생명의 세계, 감추어진 하나님의 계획들이 내 안에 밝혀지게 됩니다. 요셉은 늘 하나님과 교통의 기도가 있었기에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고 바로의 꿈을 해석해 냈습니다. 다니엘 또한 늘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 생활이 있었기에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 곧 꿈속에 담긴 크고 은밀한 하나님의 계획을 왕이 말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보여주셨기에 그 꿈을 이야기하면서 해석해 냈습니다. 다니엘의 고백입니다.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이다”(2:28) 기도하는 자에게 크고 은밀한 하나님의 계획이 보이기 시작하고 삶의 문제를 해석하면서 미래를 멋지게 뚫어나갈 수 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기도를 통해 규칙적으로 영적 대화를 하고 있는 성도는 기도하지 않는 성도보다 영 안이 훨씬 더 밝습니다. 기도의 문이 열려야 영 안이 지속적으로 열립니다. 하나님과 대화하고 소통이 되어야 지혜와 계시의 영을 지속적으로 받아서 영이 총명해지고 밝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2~3) 하셨습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려면 지혜와 계시 영을 받아 영 안이 밝아지고, 지혜와 총명이 열리면서 세상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권면합니다. 규칙적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영 안이 갈수록 밝아집니다. 영 안이 밝아지면 문제의 핵심도 간파하는 능력이 생기고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와 총기가 열려 기적의 인생을 살아냅니다.

 

둘째 회개생활을 잘해야 영 안이 밝아집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을 책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 내가 너를 권하노니 네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하라”(3:17~18) 당시에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세상 욕심에 눈이 멀어서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진심과 열정을 잃어버리고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주님은 너무나 마음이 아프셔서 너희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진노하셨습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세속화되고 신앙의 순수성을 잃고 무덤덤한 육신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을까요? 영적인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시 한번 믿음의 순수성을 회복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날마다 적용하여 마음의 눈을 씻으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보혈로 조제된 영적인 안약을 발라서 눈에 끼인 불순물을 제거해야만 영의 눈을 떠서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영 안이 흐려지면 말씀을 읽어도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기도의 문도 잘 열리지 않습니다. 찬양의 문도 열리지 않습니다. 목소리로 찬양하지만 영적인 찬양은 나오지 않습니다. 영 안이 흐려지면 계속해서 세상적인 말 욕망의 말이 많이 나옵니다.

 

3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우리는 내 마음의 영적 시력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말씀 앞에 내 자신을 비추어 보고,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아가 회개하므로 내 눈 속에 낀 불순물을 제거하고 영적 시력, 영적 분별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이 사악한 존재는 우리를 속여서 참된 것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자꾸 눈에 보이는 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게 합니다. 보십시오. 사탄이 하와를 미혹할 때 가장 먼저 공격한 지점이 눈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 때 하와의 눈에 선악과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이 뜻은 자기 욕망대로, 보고 싶은 대로 선악과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금단의 열매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인 것입니다. 정녕 죽게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는 힘이 욕망의 눈이 밝아지면 생기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의 눈을 속여 세상에 보이는 것들이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고 탐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게 합니다. 따먹게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을 지켜야 합니다. 현재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훨씬 우리의 눈을 자극하고 볼거리가 많은 유혹 천지인 죄 많은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영적인 눈을 지키기 어려운 영적 불모지의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의 영적인 눈을 지켜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성전 삼아 성령으로 내주하고 계십니다. 눈을 지키지 못했다고 핑계를 대지 못하도록 아예 우리의 몸을 성령의 전으로 삼아 좌정하여 보좌에 앉아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입술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불꽃 같은 눈으로 감찰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4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정말 무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겉만 만드시지 않고 속도 만드셨다면 속도 다 들여다보실 것 아닙니까? 사무엘상 16:7절에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십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욕망과 탐심까지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내 마음을 성전 삼아 좌정해 계시면서 불꽃 같은 눈으로 나의 중심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살면서 마음을 깨끗이 함으로 영적인 눈이 흐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영 안을 밝게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생활을 규칙적으로 하고,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내 마음의 성전에 내주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성전에 앉아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될 때 우리의 영 안은 밝아지고,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열려서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크고 은밀한 일들을 깨닫고 그것을 추구함으로 축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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