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감사예배(12월 25일)
제목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시다
말씀 : 요한복음1:14
Merry Christmas! Emmanuel~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2)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것을 기뻐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평화입니다. 12월3일 비상계엄선포 후 온 나라가 시끌 시끌합니다. 국격은 추락하고, 여야의 정치 대결은 사회를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국민들은 분노하며 좌절하고 있습니다. 분노한 농민들은 트렉터를 몰고 대통령 공관까지 가서 시위하고 있습니다. 경제는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마치 창조의 말씀이 선포되기 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는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의 음성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울려 퍼졌습니다. “빛이 있으라” 그랬더니 혼돈이 질서로 공허 속에 생명이 흑암이 물러가고 빛이 임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 소식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는 사건이며 땅에서는 평화가 임하는 사건입니다. 흑암이 물러가고 빛이 임하는 사건이고, 혼돈이 있는 곳에 평화가 오는 사건이며, 공허함이 있는 곳에 영원한 생명이 임하는 인류 역사의 변곡점이 되는 사건입니다.
온도기가 있습니다. 밖의 날씨가 영하 2도면 온도기는 정확히 영하 2도를 보여줍니다. 밖의 날씨가 영상 10도면 온도기는 정확히 영상 10도라고 말해줍니다. 온도기는 환경에 따라 변합니다. 그러나 온도조절기가 있습니다. 온도조절기는 작업 환경의 온도를 측정하고 설정된 목표온도에 도달할 때까지 데워주기도 하고 냉풍으로 설정온도에 도달하도록 낮춰주기도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은 혼돈과 흑암과 공허함이 가득한 세상의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화는 온도기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어두운 환경이 그들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불안한 상황이 그들의 마음을 장악합니다. 세상이 힘들면 염려와 불안한 눈 빛이 가득 합니다. 경제가 추락하면 한숨이 나옵니다. 정의과 공의가 사라져가는 정치를 보면서 분노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는 평화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은 온도조절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흑암 위에 있고 혼돈과 공허함이 가득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참 빛, 풍성하고 부요한 은혜와 진리, 하늘의 신령한 복과 각종 하늘의 은사와 선물로 인해서 심령 깊은 곳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모신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모든 환경에서 감사하라고 명령하면서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한 아기가 되어 말구유 위에 누우셨습니다. 천지만물 속에 생명을 공급하신 생명의 근원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왜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이 오신 심령안에는 항상 기쁨이 있고 범사에 감사함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흑암 속에 있고 혼돈과 공허함이 가득한다 할지라도 환경과 상황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모신 영혼에는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다같이 1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왜 태초에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 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던 창조주께서, 왜 그 안에 생명을 가진 생명의 근원이신 분이, 왜 점도없고 흠도 없으신 완전무결하신 거룩하신 분이 더럽고 냄새나는 말구유 위에 누우셨습니다. 왜요? 오늘 본문은 다시 한 번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이유는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러 오셨습니다. 잠시 세상 구경하러 소풍하듯 오지 않았습니다. 잠시 심방하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려고 오셨습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살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고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시기위해서 오셨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올 8월에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압록강 유역에 대규모 홍수 피해가 발생하자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채 보트를 타고 침수 지역을 시찰했다고 사진과 함께 보도했습니다.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통치자가 침수지역을 위험을 무릎쓰고 시찰하면서 대책을 내놓은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는 위안이 되는 은혜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김정은은 잠시 시찰하러 왔을 뿐 금방 평양의 안락한 주석궁으로 돌아갔습니다.
지난 12월에 윤대통령과 재벌총수들이 부산 재래시장에 가서 떡복이를 먹는 사진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와, 대통령이랑 재벌 총수들도 떡복이를 먹네” 그리고 부산깡통시장 그 분식점은 대박이 났습니다. 대통령과 재벌들이 그 집 떡복이를 먹었으닌까 엄청난 홍보 효과를 본 것입니다. 그러나 재래시장에서 대통령이 떡복이 먹방을 보인 것은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로 부산시민들이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민심을 달래고자 깜짝쇼를 연출한 것입니다. 여러분! 대통령과 재벌들이 잠깐 내려와서 재래시장에서 떡복이 좀 먹었다고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겠습니까?
대통령이나 재벌이나 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런데 성탄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사건입니다. 그것도 소마구창 같이 냄새나고 허물많은 우리와 함께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잠깐 동안 인간의 복장을 입고 와서 사진 찍고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말구유에 갓난아이로 탄생하시고 우리 죄인들과 동고동락하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여기서 함께 계시다는 것은 영원히 함께 계시기 위해서라고 성경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마태복음 29:20절 말씀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영원히 항상 24시간 동안 내내 단 1초도 우리와 떨어지지 않고 우리와 동행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구와 함께요? 허물 많고 부족하고 냄새나고 이기적이고 거짓이 가득한 우리와 동행 하기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이기적인 사람과 함께 하기 부담스럽잖아요? 전과가 있는 사람과 교제하는 것 부담스럽잖아요? 말만 하면 비난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마음이 힘들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함께 하십니다. 영원히 동행하십니다. 말구유처럼 냄새나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고자 우리 가운데 오신 임마누엘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는 독생자의 영광 곧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어떤 영광입니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예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됩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은혜란 성경에 170번 나온다. 은혜라는 단어는 창세기 6:8절에 처음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대홍수로 온 세상을 멸망시키려 할 때 노아는 하나님의 눈앞에 은혜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이 홍수로 말미암아 죽게 되는 가운데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은혜란 구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구원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자에게 값없이 구원을 베푸는 호의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거하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말구유처럼 냄새나고 볼품없는 비천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시고 성령님을 보내어 우리 마음을 열게 해서 들어오십니다. 그것도 우리 안에 영원히 거주하고자 들어오십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실 때 가져오신 은혜의 선물로 인해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선물이고 부활의 선물이고 승천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으며, 예수님이 저주 받으심으로 우리가 하늘의 신령한 모든 축복을 우리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거절당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흑암과 혼돈과 공허가 가득한 우리의 심령에 각양 좋은 은사와 하늘의 신령한 모든 부요한 복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신 이 예수님의 은혜가 공감이 되십니까?
이 은혜가 깨달아지면 우리는 매일 이 찬양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304장) 우리 안에 예수님이 가져오신 이 풍성하고 부요한 은혜가 차고 넘치기에 우리는 시대적 상황과 환경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영혼의 부요함으로 이 모든 고난을 기쁨으로 감사로 넉넉히 승리해 낼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은혜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는데... 그러면 예수님 안에 진리란 무엇입니까? 웨스트민스트 신학용어 사전에서는 진리를 “진실(reality) 혹은 진짜(genuine) 와 관련된 것”이라고 짧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실하고 진짱입니다. 다시말해 참 진리이십니다. 그리고 그 진리이신 예수님이 하신 역할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32절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의 반대 말은 죄입니다. 죄는 우리를 옭아매고 억압하고 상황과 환경에 매이게 하고 살아가는 모든 삶에서 부자연스럽게 합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진짜를 붙잡지 않고 가짜를 붙잡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다시 말해서 과녁에서 빗나간 삶입니다. 참된 창조의 목적에서 엇나간 삶입니다. 죄는 참 진리이신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삶의 상태이기도 합니다. 썩어지고 부패하고 사라지는 세상의 것들이 진짜인 것처럼 여기면서 살아가는 삶이 죄입니다. 그리고 이 죄가 우리를 부자연스러운 삶으로 몰아갑니다.
그들은 살고 있지만 죽는다는 사실에 삶이 허망하다고 합니다. 돈을 벌어 놓았지만 이것이 죽음 이후까지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에서 그들은 불안하게 합니다. 친한 친구라고 하지만 평생을 함께 하고자 언약을 맺은 남편이고 아내라고 하지만 공감해 줄 수 없을 때가 많고 자신의 외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 못하기에 여전히 그들은 외롭고 고독합니다. 마약으로 쾌락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내 심령에 채우고 채워도 가짜를 붙잡는 삶은 또다시 영혼의 갈증을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가짜를 붙들고 사는 얽매임이고 부자연스러운 삶입니다.
그러나 참 진리이신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죽음에서 자유케 합니다. 양심에서 자유케 합니다. 이기심에서 자유케 합니다. 욕망에서 자유케 합니다. 사랑에서 자유케 합니다. 외로움에서 자유케 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에서 자유케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참 생명이시고 참 부유이시며 참 사랑이시고 참 친구이시며 참 의이시고 참 빛이시며 참 길이시고 참 영광이시고 참 생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모든 얽매임에서 자유와 해방을 경험합니다.
1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영접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묻겠습니다. 여러분 안에 은혜와 진리이신 예수님의 영광이 충만합니까? 세상이 혼돈스럽고 흑암에 깔려있고 공허하고 불안하고 내일이 오는 것에 대해서 기대감이 없을지라도 내 안에 계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모든 환경에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은혜의 기쁨과 진리가 주는 자유의 감사를 혼돈과 공허와 흑암속에 있는 이웃들에게 성탄복음을 증거하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지금 밖의 온도가 영하 10도라 할지라도 내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의 은혜의 온기 때문에 내 영혼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흑암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내 영혼에 해 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이 빛 더 빛나네 주의 영광 빛난 광채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 모든 성도님들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 성탄의 복음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Merry Christmas! 하면 성도님들은 우리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주님의 이름을 외치면서 ’임마누엘” 하시겠습니다. Merry Christmas!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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