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누가복음53강(제목 :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성숙한 신앙)
2025-09-02 09:01:55
김성철
조회수   15

누가복음 53강

제목 :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성숙한 신앙

본문 : 누가복음17:1~4절

오늘 말씀은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성숙한 신앙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우리가 살아갈 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실족의 어원은 스칸달론으로 원래 새나 짐승을 잡기 위해 놓는 덫, 올무, 파놓은 함정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신앙에 장애물이 되어 예수님을 거부하게 만들고 타락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실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생되는 것을 말하기보다 고의로 사람을 죄짓게 하는 행위로 바리새인들의 외식행위를 염두하고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들을 실족하게 하는 일을 하는 원수의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원수 마귀 사탄입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을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일에 우는 사자처럼 두루다니며 삼킬자를 찾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에 우리가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신앙인이라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두 번이나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다윗도 잘 알 듯이 살인과 간음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신앙의 선배인 바나바와 크게 다투었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죄를 지을 수 있으므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실족합니까? 예수님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자란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죄인과 세리, 어린아이와 믿음이 약한자들도 포함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작은 자들에게 특별히 관심과 사랑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이런 작은 자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기 쉽습니다. 그러다 자칫 잘못하면 작은자들을 실족하게 하는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실족하게 하는 일은 너무나도 심각하고 치명적인 일이기 때문에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죄는 죽음보다 더 무섭고 가혹한 형벌인 영영히 타는 불속에 던져져야 할 정도로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족하여 하나님을 떠난 영혼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끓는 지옥에 들어가 그곳에서 영원히 고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실족시키는 사람은 21명을 칼로 찔러 죽인 유영철보다 더 무서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실족시키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연약한 사람이 상처받아 실족하지 않도록 스스로 말을 삼가 조심하고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게 늘 배려 있는 행동을 하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특별히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신앙의 성숙의 척도는 말에 있습니다. 야고보사도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3:2) 말에 실수가 없으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무던히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6절에 야고보 사도는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잠언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제가 말의 실수를 자주 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상처받는 사람이 많음을 봅니다. 정말 말을 조심하고자 노력하고 또 노력하지만 잘 안 됩니다. 말의 실수를 줄이는 방법은 생각을 말씀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고 사람을 살리는 생각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생각 믿음의 생각을 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복종시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사랑을 구현해 내는 사랑의 말, 생명의 말, 진리의 말, 믿음의 말을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더불어서 바리새인같은 이중적 신앙생활을 버려야 합니다. 항상 신행일치의 삶을 살고자 몸부림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이중적 신앙생활로 인해 실족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자식 앞에서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정말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합니다.

 

둘째로, 다른 사람을 실족하지 않기 위해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는 뜻에는 스스로도 실족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조심해야 하지만 스스로 실족하지 않도록 자신을 잘 돌봐야 합니다. 스스로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잘 돌보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용서함으로써 실족하지 않도록 하라고 교훈하십니다. 그런데 무조건 용서하라고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먼저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라고 합니다. 경고란 형제의 잘못을 책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책망을 통해 죄의 심각성을 깨달을 때 하나님이 앞에서 회개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용서보다 어려운 것은 죄를 책망하는 것입니다. 왜 사랑의 하나님이 조건없이 용서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조건없는 사랑으로 십자가에서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용서가 우리 각자에게 임하게 하기 위해서는 나의 죄를 진실로 회개해야 합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용서했다 할지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용서가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가 필요합니다. 용서의 전 단계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죄를 짓고 회개하면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인간은 한 번 회개로 온전히 변화되지 못하고 죄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알고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죄를 반복하다보면 자포자기 할 수 있지만 끝까지 회개를 붙잡는 중심을 보고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를 반복하다 본면 죄의 강도가 서서히 약해지면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한 번의 회개로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회개로 변화되어간다는 것을 주님은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남이 잘못했을 때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일곱 번까지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일곱은 완전수입니다. 이것은 무한히 끝까지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22절에서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경고해서 회개만 한다면 끝까지 무한히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용서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에게 죄를 범한 사람이 회개한다면 무한히 용서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회개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내 안에 생긴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용서해야 합니다.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또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는 자신을 보면서 변화될 때까지 회개하는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회개하는 우리를 끝까지 용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북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아합왕이 회개할 때 용서하셨습니다. 심지어 완악한 바로가 회개할 때도 바로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가 다시 죄를 지을 경우를 알면서도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무한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다른 사람이나 나 자신을 반복적으로 회개하고 용서받을 때 우리는 성숙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들의 죄를 책망하며 회개시켰습니다. 간첩의 누명, 도둑의 누명을 씌웠습니다. 그들이 죄를 회개하였을 때 울면서 용서를 선포했습니다. 요셉의 용서로 이스라엘은 거룩한 12지파 공동체로 성숙해 나갔습니다.

 

우리는 회개를 통해서 무한히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끊임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회개하는 내용은 신앙이 성장하면서 달라집니다. 믿음이 성장하면 전에는 죄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들이 죄로 여겨지고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회개해야합니다. 우리는 반복하여 죄를 짓는다고 자학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피 앞에서 매일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며 반복적으로 회개해 나가면 조금씩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하여 갑니다. 우리가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성숙하면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실족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점점 겸손해 지고 점점 거룩해 집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의 실수나 잘못을 용서해 주지 못하고 미워하고 보복하려 한다면 교회는 날마다 시기와 분쟁 속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용서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죄를 덮어줌으로써 또 다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점입니다. 아닙니다. 죄에서 떠나게 하기 위해서 용서가 필요합니다. 용서는 선택사항이 아니고 명령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용서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에서처럼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용서를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용서는 상대방에게 자유를 줄 뿐 아니라 사실은 자신에게 더 큰 평안과 자유를 줍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의 마음이 불편하고 자유가 없어지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연약함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실수와 허물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우리의 연약함으로 상처를 수시로 받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는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성숙한 신앙인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거룩함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죄를 책망하고 회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합니다. 그리고 무한히 용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광주동광교회가 죄를 책망하고 회개하고 용서받는 일을 반복하면서 우리 모두가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성숙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가운데 점점 더 성숙하여 상처를 주지도 않고 상처를 받지도 않는 그런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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